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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야 할 유산 언어 폭력"(펀 글)
    BC 州 부동산 2009. 5. 28. 02:50

    *** 이 글은 세계일보 ‘주필’이신 조 병철 님이 쓰신 칼럼을 퍼 왔습니다.

    제 생각과 같아서 입니다. ***

     

    [조병철 칼럼] 버려야 할 유산-언어폭력‘시체 치우기 짜증, 자살세 걷자’

     

    ‘가는 말이 거칠면 오는 말도 거칠다’지만 그래도 이건 상궤를 이탈했다. 상대를

    베지 않고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살기가 배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향해 날리는 우파 논객의 말이 그렇다. 피가 뚝뚝 듣는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서거는 자살로 고쳐야 한다. 기사는 사실을 전하는 게

    먼저지 애도를 유도하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도 거들었다. 이동복 북한 민주화포럼 대표는 “그의 오발탄 인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거둬들이고 우리 시대를 결손시대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다.

    모두가 노 전 대통령에게 각을 지었던 인사다. 생전에 미워했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렇게까지 가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 뚜껑을 덮는

    이에겐 작은 허물쯤은 눈감아 주는 우리 풍토에서는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다.

    침묵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들만 대놓고 비난하는 것도 공정하지는 않다. 과거 적대 진영에서 이들에게

    내뱉었던 말 역시 얼마나 잔혹했던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진보 진영의 진중권씨가 했던 말은 진저리를 치게 한다. 그가 2004년 4월 검찰

    수사 중 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 했던 말은 저급했다. “앞으로 자살세

    걷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시체 치우는 것 짜증 나니까요.” 지식인 특유의

    위악적 말투로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과잉반응이지만 예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는 계속해서 “자살할 짓을 왜 해. 자살하는 경우 자신의 명예가

    부당하게 구겨졌거나 이럴 때 하는 건데, 그게 위선이죠. 한마디로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일을 안 해요.” 당시 한 진보 성향의

    언론은 ‘자살만이 유일한 해결책인가’라는 사설에서 자살하는 명사를 호되게

    꾸짖었다. “죄가 없다면 살아서 끝까지 결백을 밝혀내야 하고, 죄가 있다면

    떳떳이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면 될 게 아니냐는 게 누구나 갖는 소박한 생각이다.

    (중략) 우리 사회는 자살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분위기가 은근히 있고, 심지어 이들의 자살을 미화하고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까지 삼았다”고 지적했다. 오늘에도 그렇게 호기롭게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 역시 말과 글로 호구를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누가 옳고 그르다고 재단하고

    싶지 않다. 다들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나머지 이성을 잃고 터져 나온

    망언으로 이해하고 싶다.

    사실 한때는 너나없이 할 말을 못하고 살았다. 흑을 백이라 쓰고 백을 흑이라고

    우기기도 하였다. 직필인주(直必人誅: 바른 말하면 정권의 탄압을 받고)

    곡필천주(曲必天誅: 왜곡 보도는 역사에 죽음을 당하는)의 시대였다. 모두가

    참담하고 부끄러워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 대종사'가

    인용한 그 한마디에 가슴이 시렸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세월은 흘렀고 말의 족쇄가 풀렸다. 할 말은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때부터 언어가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부박해졌다. 권위주의의 청산은 언어의

    추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말이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변했다. 더 살벌한 말,

    더 잔인한 말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말이야말로 정신을 담는 그릇이요 행동의 전위부대다. 말이 훈기를 잃는다면

    행동 또한 사나워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상가에서

    대통령의 조화가 짓밟히고 두 번째 보낸 조화조차 설 땅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조문 인사도 청탁을 가려 내쫓기거나 반김을 받는다고 한다.

    말의 원죄가 빚어내는 업보다.

    노 전 대통령은 14줄의 짧은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생전에 누구보다 이 세상에 원망이 많았고 언사 역시 거칠었던 고인의

    마지막 당부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언어의 품위를 세우자.

    사회의 격을 높이자. 그게 고인의 바람일 게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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