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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카고(Chicago, U.S.A.) 연수기
    여행기 & 여행 사진 2010. 1. 31. 16:28

    ***** 시카고 연수기 *****

    1990년 어름에 시카고에 연수를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건 가기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980년대 초(1982-1984) NYU Stern School(당시엔 GBA:
    Graduate School of Business Administration)에서 유학할 때
    제게 많은 흥미를 준 것이 'Financial Futures and Options'
    였습니다. 적은 돈으로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고(물론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본래 목적인 미래의 가격을 고정시킬 수 있어
    경영계획을 세우기도 좋고......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매력적
    이었습니다. 그때는 석유가격이나 농산물가격의 변동이 심해서
    해당상품을 원료로 쓰는 국내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춤을 추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상품도입 논의를
    할 생각도 없던 때 이기도 했죠. 미국(선물, 옵션 시장이 가장
    발달된 나라)에서는 이런 파생상품을 이용하여 많은 이익을
    보았으며(생산자. 소비자 모두) 또 미래의 가격변동에 의한
    충격을 줄이려는 노력이 활발한데 비해 국내에서는 정유회사나
    식품회사에서 상품(원유, 콩, 밀 등)위주로 자체 필요에 의해
    조금씩 '선물시장'(당시 유명한 게 시카고의 CBOT, CME 와
    뉴욕의
    선물거래소
    였습니다.)에 참여하던 수준이었고 국내에선
    '한국선물협회'라는 게 있어서 선물상품 도입방안을 검토,
    연구하며 한국 '선물거래소'로 승격하기만을 바라던 때였죠.
    선물협회는 CBOT(Chicago Board of Trade) 나 CME(Chicago
    Mercantile Exchange)의 홍보 및 교육 팀과 연계하여 국내에
    많은 세미나를 유치하였고 우연한 기회에 CBOT 에서 강사가
    와서 하는 3일짜리 교육에 참가하면서부터 저는 선물협회와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긴밀한 관계라는 게 그쪽으로 직장을
    옮긴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하는 '세미나'나 교육의
    초청장을 빼먹지 않고 꼭 보내주는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한국인으로서 시카고의 선물시장과 관련되는 분으로는
    '드. 폴 대학교'(시카고 선물거래소(CBOT) 근처에 있습니다.)의
    '최 진욱'교수님(실무에 강했음)과 '일리노이 대학교'의
    '박 헌영'교수(이론에 강했음)님이 계셨고 선물회사(이름은 잘
    모름)에 근무하던 '서 중원'씨가 한국에 많이 알려진 인물들
    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많이 알려진 것은 선물협회가 초청을
    자주하여 세미나를 많이 해서 한국의 관심 있는 분들은 잘 안다는
    거죠.) 이 분들은 한국의 선물시장 개설과(실제 개설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더라도) '선물 및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을 한국에
    확산시킨 점에는 공이 큰 분들 입니다.

    이런 와중에 시카고에 소재하는 REFCO라는 선물회사가 서울서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거기에 참석한 저는 참석 했다는 표시로
    명함을 한 장 떨어뜨려주고 왔죠. 그러고는 회사에 선물시장
    연구가 필요하며 인력은 어떻게 양성해야 한다는 등의 보고서는
    여러 번 냈죠. 그 중엔 '시카고 연수'(해외연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구체적인 것은 없고 연수를 보낸다는 결정이 나면
    그 때부터 '연수처 물색 등을 선물협회의 도움을 받아 추진한다.'
    정도의 막연한 것이었습니다.
    이 당시 한국의 투자금융회사들은 향후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이었으니 '업종전환'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은행, 증권사, 종합금융회사 등 조건과 정부정책이 맞으면 전환을
    시킨다는 것이었죠. 이로 인해 한국, 한양, 금성 이 은행으로,
    지방사 들이 종합금융회사로, 서울, 고려 등이 증권사로 전환해
    갔지만 중앙, 동양, 제일 등의 투금사는 일단 전환을 안하고
    버티는 시점 이었죠.
    중앙도 일단 전환은 안 하지만 언젠가는 종금사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두고 인력양성에 박차를 가할 준비를 할 때 였습니다.
    투금사에서 종금사로 전환하기위해 준비할 사항은 가장 시급한
    것이 '국제금융'을 담당할 인력양성 이었죠. 당시 투금사에서는
    '전산실'요원이 Program을 짤 때 사용하는 것 외는 '영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업종이었습니다. 그러니 국제금융 시장에
    뛰어들려면 영어를 할줄아는 인력과 국제금융시장의 상품을
    이해할 수 있는 인재가 우선 필요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해외연수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미국에서 한 장의 '초청장'이 날아왔습니다. 한 1년 전
    서울서 세미나를 했던 Refco 社에서 보낸 것으로 6주 또는 12주
    교육을 무료로 시켜 주겠다는 거였죠. 참가자는 숙식비만 부담
    하면 자기네 교육센터에서 무료로 교육을 시켜주고 후반 6주는
    자기네 Trade desk를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조건 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계획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참가하려 구요.
    이 때 또 다른 부서에서는 '싱가포르'의 IBF의 6주짜리 연수를
    추진하고 있었죠. 거의 같은 시기에 두 보고서가 올라가니
    위에서는 '둘 다 보내는데 영어시험을 거쳐서 대상을 선발한다.'
    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랴부랴 TOICK 시험이 특별전형으로
    회사 내에서 치러졌고(여기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그 결과
    시카고는 제가, 싱가폴은 다른 직원이 선발 되었죠.

    그런데 싱가폴로 결정된 직원이 해괴한 논리로 자기가 미국에
    가야겠다는 겁니다. "토익 점수도 내가 높고, 나는 미국을 안
    가봤기 때문에 가야겠다."는 겁니다. 토익점수는 일정점수
    이상이 되면 일단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지 높은 점수획득자가
    연수지를 선택한다는 얘긴 아무데도 없었고, 부랴부랴 치뤄진
    토익의 문제가 어떤 준비서에 나온 샘플문제를 그대로 가져왔고
    그 친구는 그걸 본 덕분에 980점을 받았다 나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초청장이 제게 왔고 '정 니가 못 오면 니네 회사의
    다른 직원이라도 꼭 보내달라.'는 것이었고 제가 갈 수 있는데
    왜 안가겠습니까. 저도 가야겠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결국 제가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이 일 이후로 그 직원과는
    사사건건 마찰이 많았고 사이가 안 좋습니다.

    결정이 되자 준비를 시작하는데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6주동안
    숙소를 제일먼저 구해야 했고 비행기 예약도 해야 했습니다.
    예약은 North West Airline 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그래도 비용을
    생각하면 그 항공사가 가장 싸기도 했고 또 한국대리점인
    '샾 항공'의 사주가 친구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카고 왕복에 뉴저지 사는 동생도 만나봐야 했고
    또 같이 공부하다 뉴욕에 주저앉은 '최 장현'선배도 보고 싶었고
    또 주말을 이용해서 '토론토'(CANADA)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방 충극'(대학동기)이도 만나기 위해 $200을 더 주고 표를
    샀습니다. 숙소 예약은 당시 '한양투자금융'에 다니던 '한 영호'
    라는 후배가 있었는데 그때 같은 곳에서 먼저 연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해서 숙소를 물어보니 한 시간쯤 떨어져
    있는(Refco 회사에서) 모텔인데 싸고 괜찮다고 해서 예약을 부탁
    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NWA 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동경에서 갈아타고
    시카고로 향했습니다. 시카고 공항에 도착하니 지금은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하는 '김 수길'(고교. 대학 동창)군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그 때 아마 무슨 언론재단의 연수로 1년간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끌고 나온 차가 당시 미국시장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되는 신형 포니 였는데 번호판에 놀랍게도
    'KOREA' 라고 써 있었습니다. 물론 랜트카 회사에서 받은
    것이지만......
    한국 동포가 많이 사는 '로렌스'라는 동네를 지나 링컨에비뉴에
    있는 'SPA Motel'에 들었습니다. 온천하고는 거리가 먼 그냥
    이름이 그랬습니다. 김 수길 군과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 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가보니
    놀랍게도 과거 선물협회에서 세미나 할 때 얼굴을 익힌 선물협회
    직원이 와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물으니 자기도 연수
    받으러 왔고 동양선물에서 온 친구도 있다는 겁니다.

    식당, 물건 파는 곳(수퍼 등) 등 안내를 받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날 일요일에 연수 받을 곳을 찾아 갔습니다. 길을 알아야
    월요일에 헤매지 않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루프'(미니기차인데-경 전철 이라고 하나요?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패스. 트레인’과 크기가 같았습니다. 시카고 시내에서
    한 바퀴를 돈다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나요?)를 타고 당시
    한번 타는데 1불인가 1불 25센트인가 했는데 한달 '패스'를 사면
    한달 동안 무제한 탈 수 있는 제도가 있어(45불인가 60불인가
    했습니다.) 그걸 끊었습니다. 그러고 시간 나면 탔죠. 로렌스
    연습장(참 지금에야 밝히지만 로렌스에 있는 '놀만 골프'라는
    닭장 연습장에서 7일 연습하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퍼블릭
    코스에서 처음 골프를 쳤습니다.(머리를 올린다고들 하더군요.)
    스코어야 비밀입니다만 골프를 친 것은 사실 입니다. 같이 친
    '방 충극'(대학 동창으로 85년에 캐나다로 이민)이가 증인
    입니다.)갈 때도 타고, 일요일 날 미시간 호수에 수영하러 갈 때도
    타고, 시어즈 타워 구경갈 때도 타고, 아쿠아리움 구경갈 때도
    타고...... 본전은 뽑았습니다.

    우선 일요일에 시내로 갔습니다.
    연수를 받을 Refco라는 회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아야
    월요일부터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전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가서 '라살'스트리트를 찾으니 잘 찾아 집니까?
    물어물어 헤 메다 겨우 찾았고 교과서나 교재에서 자주 보던
    우람한 건물이 시야를 막기에 정문 쪽으로 가니 그게
    Chicago Board of Trade 였습니다. 그 옆에 붙어있는 건물에서
    Revco라는 이름을 확인하고는 시내 구경을 나섰습니다.
    이리저리 걷기가 좋은 게 전철이 시내 중심에서 지상으로
    튀어나와 큰 사각형을 그리며 한바퀴돌아서 온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어있어 웬만큼 돌아다녀도 전철이 보이는 곳에
    가서 전철을 타면 된다고 생각하니 길 잃을 걱정이 없어
    지더라고요. 미시간 에비뉴 인가요 ? 퍼레이드도 자주 하는 넓은
    길이 있었습니다. 건축의 도시라는 시카고에 유명한 건축물은
    이 길 양쪽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 끝자락으로 올라가서 미시간 호숫가에 가보니 낚시질 하는
    사람도 많았고 또 조금 가니 놀랍게도 모래사장이 있고 사람들이
    수영을 하더라고요. (2주 후에 저도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
    보았습니다만)

    그리고 월요일부터 연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기초야
    한국서도 했던 거라 그런대로 따라 갔습니다만, 장 끝나고 시황
    설명을 할 때는 좀 황당하더라고요. 영어는 당연히 잘 할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속사포처럼 쏘는데 한 6년 만에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영어를 들으니 그게 쉽게 들어옵니까? 귓가에서만
    맴돌다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수 자는 한국사람이 한 10명(중앙투금의 저, 한외종금(이 친구는

    후에 밴쿠버에서 다시 만났고 대학 후배라는 것도 밴쿠버에서

    다시 만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대신증권(이 친구는 일요일 날

    흑인동네를 지나는 전철을 탔다가 강도에게 돈과 시계를 털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외환은행 등)과 그곳 신입직원 2명,

    그리고 일본에서 온 사람 3-4명 이렇게 받았습니다만 처음엔

    서로 눈치 보느라 조용하지 않습니까? 5주정도 지나니 농담도

    하게 됐습니다만.

    시어즈 타워(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죠. 전망대
    올라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 6달러인가 낸 것
    같습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방이 탁 트여있어 볼만 합니다.)

    존. 행콕. 센터(새까만 건물 그런대로 폼 납니다. 보험회사라는
    것은 2000년에야 알았습니다. 낮에는 올라가면 그저 높은데
    왔구나 싶고 밤에 식당에 예약(한 1주일 전쯤 예약을 하면서
    남쪽 창가 자리를 부탁하십시오. 야경이 가장 멋집니다.
    재수없이 호수 쪽 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면
    뭘하러왔나
    ?'하는
    푸념하다 보면 밥맛 하나도 없어집니다. 호수 쪽에 밤에 보이는
    것은 그저 깜깜한 어둠뿐입니다. 간혹 운이 좋아야 지나가는
    배(호수지만 큰 배가 다니고 군함도 있습니다.)의 불빛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하고 저녁을 드시면 분위기 끝내 줍니다.
    시카고 야경도 쌈 쌈 합니다. 가격은 조금 쎄더군요.

    옥수수 빌딩(건물이 옥수수 두 개 세워놓은 것 같은 높은 건물
    입니다. 아파트라 나요? 시카고 강 옆에 있습니다.)

    각각 갖다 붙인 사연이 하나같이 유명한 건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더구나 고의인지 '소의 과실'(소가 뒷걸음 치다
    석유등을 쓰러뜨려 그 불이 건초에 붙었다는 설)인지 모르나
    시카고 대 화재(다운타운이 몽땅 타고 Water Tower 라는 수도 국
    탑 하나만 남은 사건)때 모두 타버려 새로 도시 계획하여 건설
    하였기 때문에 도시가 반듯반듯해서 보기도 좋습니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투어버스(어느 곳이나 도시에 가시면)를
    먼저 타고 한 바퀴 돈 다음 그 중 흥미를 끄는 곳에 다시 가 보는
    것이 저의 도시 관광 순서 입니다. 책자보고 찾아 다니기는
    너무 힘이 드니까요. 투어버스는 요소요소를 빼 놓지는
    않으니까요.

    이 때 기억이 남는 일은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싹 쓸어
    버린 일이 일어나 석유가격이 40달러를 넘어버렸고......
    자동차를 렌트해서 무작정 달려본 일이 있었습니다. 가다 보니
    아이오와주의 '데. 모인’(참, 그러고 보니 여긴 친구 '권 인태'군이
    유학 가려고 비자까지 받고서 포기한 학교가 있는 곳이군요)에
    갔다 온 일이 있었습니다. 황당한 일. 저는 차를 빌릴 때 그 쪽
    사무실에 가면 더 빨리 빌릴 수 있는 줄 알고 바로 사무실로
    갔더니 '예약이 안된 분은 차를 빌려주지 않는다고 합디다.
    그래서 예약센터의 전화 번호를 받고 사무실을 나오니 바로 옆에
    공중전화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예약하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
    가니 차를 빌려 주더라고요.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바로 빌려주면 수신자부담 전화 비라도
    아낄 텐데...... 했습니다.) 그 차를 몰면서 '크루저. 코트롤러’라는걸
    처음 써 보았습니다. 일정속도에 오른 후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운전자는 핸들만 붙잡고 있어도 차는 계속 같은 속도로 가더군요.
    이 건 미국 같은 도로가 넓고 차가 많지 않은 곳에서는 그만
    입디다. 곧은 길에서 두 발을 좌석에 올리고 핸들만 잡고 가는
    기분도 괜찮았습니다.

    4주를 마치고 토론토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중간에서 비행기를 한번 갈아타야 했고 캐나다는 다른 나라 였기
    때문에 그 때만 해도 비자를 미리 받아야 했습니다.(지금은 면제
    혜택이 있지만 말입니다.)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가
    디트로이트 였습니다. 디트로이트는 NWA의 주요 기지 중 하나
    였습니다. 공항에는 온통 NWA의 비행기만 잔뜩 있고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는 한쪽 구석에 있더라구요.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주요 국제 공항은 주요 항공사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분할이 되어 있더라구요. 예를 들면 '디트로이트'나
    '미니아폴리스'가 NWA의 주요 기지이고 시카고의 '오. 헤어’는
    UA......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시카고에서는 찬밥 신세로 공항 구석 출입구로 탑승을 했는데
    디트로이트에서는 중앙으로 내리더라고요. 비행시간이 2시간
    18분으로 적혀있어 꽤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한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비행기가 착륙 하더군요. 그러면서 스튜어디스 안내가
    현지시각은......'하는데 아차
    ! 시간대가 한 시간 변경되는구나.'
    하고 알았죠. 그리고는 다시 한 1시간을 죽치고 밤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로 향했습니다. 공항에 내리니 밤 10시가 넘어
    한밤중 이더군요. '방 충극'군에게 전화를 했죠. 내일 만나자고
    그러면서 호텔 이름을 알려 주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득달같이 왔더군요. 덕분에 아침을 잘 차려진
    한식으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차에 골프백 두 개를
    싣고 연습장으로 향했습니다. 시카고의 지하닭장('놀만골프'
    였죠 ? 아마, 그 '로렌스'라는 곳에 있는 1층 골프샾, 지하 연습장
    으로 된 곳)에서만 연습하다 넓은 광장에서 공이 날아가는
    방향까지 볼 수 있는 연습장에서니 저절로 가슴이 뛰더군요.
    거기서 공을 한 박스 치는데 '골프채' 잡아본 지 1주일 되는 놈이
    날리면 얼마나 날리겠습니까? 이리저리 제 맘대로 날아가는
    거지요. 그래도 '헛 스윙' 안하고 공은 맞히니 친구녀석 하는 말이
    "됐다. 가자." 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친구가 회원으로 있는
    퍼블릭 골프장으로 갔습니다. 요즘은 모르지만 그 당시 토론토의
    퍼블릭 골프장은 주민을 위해 1년에 한국 돈으로 50만원 정도를
    내면 1년 내내 '그린 피' 없이 무제한 골프를 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있어 이 친구는 공짜, 나의 그린 피-캐나다 돈으로 10불-
    인가 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보니까(초보가 아니라 그 뭡니까
    우리나라에서 필드에 처음 나가면 '머리 올린다'라고 하죠 ?
    제가 알기로는 본래 이말은 기생들이(한국인지 일본인지는 잘
    모릅니다.) 처음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머리를 올리러 갔으니까) 전동차를 타야 공을 빨리
    찾을 수 있다고 전동차를 빌렸죠.
    그 다음 '티샷'부터 18홀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지났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골프코스 경치가 무척 좋았다는 것과
    한국 사람만 전동차를 타고 골프를 쳤고 캐나다 인 들은 자기
    백을 각각 메고 이동하거나 손으로 끄는 카트에 얹어 끌고 다니며
    골프를 친다는 것입니다. 아 또 하나 큰일날 뻔한 일이 있었죠.
    몇 번 홀 인지는 모르고 한 170야드 정도 남은 거리를 두고
    3번 아이언(아직 우드를 휘둘러본 적이 없어 멀면 무조건 3번을
    잡았습니다.)으로 치려니 그린 위에 앞 팀이 있더라고요. 잘만
    맞으면 '온. 그린’이 될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 데 친구녀석 왈
    "야, 나 실력에 아무리 잘 맞아도 저기까지 안 가니 그냥 쳐!!!"
    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냐, 날아가 !" 할 수도 없어 냅다 휘둘렀죠.
    그랬더니 그게 암팡지게 맞아 그린 위에서 퍼팅하는 앞팀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누가 맞았으면 '캐나다
    귀신'이 될 뻔 했죠. 앞 팀 사람들은 아마 자기들이 시간을 끌어
    빨리 가라고 일부러 한 줄 알고 두 사람이 씩씩거리며 달려
    오더라고요. 필드에 처음 나간 놈이 그게 얼마나 황당한 결례인지
    알 턱이 있습니까? (오랜 세월이 지나서 조 폭 앞 팀에게 그런
    무례를 저질렀다가 한 1억 원을 뜯겼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도 있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결례를 했으니까요.) 저는
    무조건 "Sorry!" 을 연발하고 친구녀석은 "이놈이 오늘 필드에
    난생 처음 나와 지가 어떻게 치는지도 모르고 쳐서 그렇게 됐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한 5분을 사과하고나니 돌아 가더라고요.
    첫 필드 경험 치고는 좀 고약한 경험을 했죠. 그리고는 CN tower
    등을 구경 했습니다. 이 때 친구녀석이 어떤 사람을 만나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잘 들 있죠?"등의 인사를 한 후 제게 와서
    "저 분이 토론토 교육관으로 계셨던 분인데 본국으로 발령 받아
    간 지 2년 만에 이민을 왔단다." 하는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죠.
    '캐나다가 정말 그렇게 좋은 곳인가? 영사관에서 근무할 정도면
    한국서는 '잘 나가는 분'일 텐데 귀국한 지 2년 만에네 완전히 이민을
    오다니....' 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나이아가라'라로 갔습니다. 유학때 비자가 없어
    못 봤던 'Canadian Niagara'를 원 없이 봤습니다. 나이아가라의
    진수는 카나다 쪽에서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굴 속으로
    들어가서 폭포물 바로 뒤에서 떨어지는 물도 보았구요. '장관'
    그 자체 였습니다. 배(Made fo Mist 인가요?)는 또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2박 3일간의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시카고로 왔습니다. 올 때는 '디트로이트'에서 '시카고'까지
    비행시간이 18분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역시 시간대 변경으로
    한 시간을 번 거죠.

    시간은 계속 잘도 갔습니다. 6주가 길게만 느껴졌는데 어느 틈에
    반을 더 지나고 귀국 날짜를 잡아야 하더라고요. 그 동안 시카고를
    샅샅이 뒤져(?) 대강의 지리도 익혔습니다. 제가 2년 동안 누비던
    맨하탄 처럼 자세히는 몰라도 지금이라도 시카고에 떨어뜨려
    놓으면 어든 든 찾아갈 것 같습니다. 바다 같은 미시간호반도
    둘러 보았고요. '캣지에비뉴'에 있는 영화관에도 여러 번 갔죠.
    그리고 '로렌스'에 있는 목욕탕(한국사람이 운영)에도 갔었죠.
    물론 규모야 옛날 동네목욕탕 보다 작지만요. 한 번은 도심에서
    링컨에비뉴의 숙소까지 걸어오는데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한 두 시간
    반이 걸린 것 같았습니다. 걷다 걷다 나중엔 오기가 생겨 숙소까지
    걸었습니다.

    그 중간에 한국에 전화를 했더니 협회가 주선하여 두 사람이 더
    연수를 받을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잘 되었죠.

    그렇게 시카고 연수는 끝이 났습니다.
    정말 좋은 연수였습니다.

    (2010년 1월 31일 다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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