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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3국 스쳐지나기여행기 & 여행 사진 2010. 1. 25. 07:50
***** 유럽 3개국 스쳐가기*****
1985년 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앙투자금융(당시)의 사장님이
FCI(Factors Chain International)에서 개최하는 연차 총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FCI 는 국제팩토링 업무를 취급하는 회사들의
연합으로 비슷한 기구가 하나 더 있었으나, 대부분의 한국회사
(주로 투자금융회사 들이 업무영역 확대를 위해 국제팩토링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 했습니다.)들은 FCI 에 가입 했습니다.
그 때의 초청은 '중앙투자금융'이 가입 신청을 해 놓은 상황이라 총회
초청을 받으면 정말 큰 하자가 없는 한 정회원으로 가입이 된다는
귀 띰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총회의 참석은 다른 나라 회원
회사에 중앙투금을 선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신참으로서)
회사 내에선 누가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되었습니다. 물론
주 참석자는 당연히(본인이 고사 하지 않는 한) 사장님
이었습니다. 수행은 누가 할거냐? 한다면 누가? 였습니다.
결국 제가 수행을 하게 되어 난생처음 유럽 땅을 밟아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투금사 사장 3명, 수행실무자 3명이 가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4곳 한 회사는 실무자만, 또 한 회사는
사장님만 이었습니다.
일정을 짰습니다. 회의는 독일의 '뮌헨'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앞으로 거래할 (이미 가입되어 있는)회사들도 새로 가입예정인
한국의 회사들에게 오는 길에 자기네 회사를 방문해서 앞으로
업무협조 논의도 하고 싶다는 초청도 꽤 있었습니다.
아예 참가예정인 모든 회원 사에게 ‘몇 월 며칠에 초대합니다.’라는
초청장을 보내 온 회사도 있었습니다.
여러모로(항공편, 초청회사 및 방문회사 등) 검토한 끝에
‘프랑스. 파리’(당시 대한항공 직항 편이 있었습니다.)에 가서
회원 사 방문을 하고 독일의 뒤셀도르프 회사를 거쳐 회의가
열리는 ‘뮌헨’ 에 가서 회의 참석 및 정식 가입을 하고 ‘덴마크’와
‘일본’에 있는 회원 사를 방문하고 귀국한다는 일정을 확정 짓게
되었습니다.
출장 첫 날, 공항에서 파리 행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습니다.
보딩브리지를 지나 비행기에 들어서자 "이따 내려서
뵙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사장님은 좌측으로(1등석), 저는
우측으로(이코노미) 갈라졌습니다.
‘앵커리지’! 그간 두 번 기착을 했던 곳이지만 처음엔
유학 갈 때 미국 '입국심사'를 위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내렸고,
귀국 때는 또 다른 설렘으로 제대로 구경도 못한 ‘앵커리지’ 공항
이었는데 이번 만은 아주 편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을 했죠.
6월의 앵커리지 공항 공기는 상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맑은 공기가
가슴속의 찌꺼기를 다 훑어 내는 듯이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는 대 여섯 시간을 날아 '드골'공항에 도착
했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유럽에도 사람 이름을 딴 공항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제가 문외한 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 이름을 딴 공항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지명을 딴 공항만
존재하지요. 언제쯤 가야 우리도 자랑할 만한 사람의 이름을 딴
공항을 하나 가져 볼까요? 아마 불가능 하거나 요원할 겁니다.
누가 용케 이름을 붙여 놓은 공항을 만들었다고 해도 정권이
바뀌면 또 개명을 해야 한다고 온 나라가 난리 법석을 떨게 분명
하니까요. '광화문' 현판도 그렇습니다. 정말 바꿔야 한다면
경복궁이 제대로 복원되고 광화문도 처음의 제 위치에 옮겨질 때
바꿔도 문제가 없고 또 정말 역사 바로 세우기를 원한다면
최초에 광화문을 지었을 때 제일 먼저 현판을 썼던 분의 글씨를
가져와서 달면 되지 '박 정희'(개인적으로는 원수의 반열에 드는
사람입니다.)의 글씨는 안되고 경복궁이나 광화문과는 상관도
없는 '정조'(그가 광화문을 중건 했다거나 고쳤으면 몰라도......)의
글씨는 여기저기서 모아와서 붙여도 된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집자는 신문의 '제호'나 만들 때 가끔 쓰는 걸로 알고 있었지
역사적인 현판에 여기저기 글자를 모아와서 붙인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 입니다. 이러니 공항에 누구 이름을 붙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 겠습니까? 이 글을 처음 쓸 때 논의가 있었는데
현재 현판엔 누구의 글씨가 있는지 모릅니다.
입국신고를 하고 나오니 제 나이 또래의 남자가 대학노트 크기만한
종이에 제 이름을 써서 들고 있더군요. (그 분이 3일간 안내를 멋지게
해줄 분 이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고 사장님을 모시고 가느라 걱정이
되어서 종합상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을 했더니 안내인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호텔(아마 이름이 '까스띨리옹' 인가 했습니다. '엘리제'궁
근처에 있는 오래됐지만 품위가 있었습니다.)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시내구경을 했습니다. "파리 시내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SKY LINE 을 맞추기 위해 일정높이(아마 7층)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에펠 탑에서 내려다 보면 시내의
대부분 건물의 지붕을 내려다 볼 수가 있습니다......"로 시작된
안내는 정말 본받을 만 했습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가이더를 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한다고 했습니다만, 가이더 생활을 위해
유명한 역사학자가 쓴 '프랑스 역사'책을 두 권(시각을 달리하는
두 권을 읽고 자기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고 합디다.)을 읽고 관광
안내책자를 수도 없이 읽었다고 하였습니다. (새로 나올 때 마다
꼭 읽어 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지 그가 설명하는 요소요소는 그냥 봐서 즐거운 게
아니라 역사적인 유래 등이 곁들여져 있어 아주 매력적인 안내가
되어있었습니다.
‘삐갈 광장’(우리나라로 치면 용산 역 이나 청량리쯤 되나요?
몸 파는 분들이 많은 곳. 지금은 잘 모르지만……) 인가를 거쳐
'몽마르뜨'언덕에 갔습니다. 점심도 먹을 겸 언덕 모퉁이의 식당에
들어가 창가에 앉았습니다. 그래야 지나 가는 사람들 구경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점심을 뭘 먹었냐고요? '개구리 뒷다리 요리'를
시켰습니다. 앞에 앉은 사장님 눈이 똥그래 지시더라고요.
"박 대리, 그거 먹을 줄 아나?" 하시길래 "아닙니다. 한번
시도해 보려 구요." 했지만 결과는 '달팽이 요리' (옛날에 한번 먹고는
다시는 주문하지 않는 요리명단에 올렸죠.) 처럼 참담했습니다.
맛도 별로고 양도 작아 오후 내내 배고파 했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거리의 화가가 그린 소품(?)을 하나 샀습니다. (지금도 이 그림은 딸애의
방에 걸려 있습니다만, 그림을 아는 사람은 구별을 해 내더라고요.
싸구려라고......) 화가의 말은 '노르망디'지방의 풍경 이라는데
안 가본 저야 알 수가 있나요.
그리고 '에펠 탑', 유람선(센강), 센 강 강변을 산책했죠.
1985년의 6월 센 강 강변엔 일광욕을 즐기는 청춘들이 많이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눈길을 확 끄는 두 여자가 있었으니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엎드려 등 짝을 태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잘 쳐다보면 혹시 뭐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에 가까이
가면서 유심히 쳐다보는데......"박 대리, 뭐 보노?" 하시는 사장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좀
아쉽더라고요. '조금만 더 보면 혹시......'
'노틀담 성당'엘 갔습니다. 도심 가운데 그리고 도심을 가르는
‘센’강 중간의 섬에 있는 그 성당은 교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명소중의 한곳 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역시 성당 안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성당 안을 비추는 햇빛도 그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평일 오후에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토록 간절하게 기도를 올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초에 불을 붙여 촛대에 꽂았습니다. 그 촛불은 이미 꺼져
있겠지만 저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노틀담 성당은 뒤에서 봐야 진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라는 가이더의 말에 '뒤 꽁무니가 무슨......' 했습니다만
배(유람선)를 타고 가다 쳐다본 성당의 뒷모습은 정말 멋이
있었습니다. (이 때 찍은 사진이 아직 집안 어딘가에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무덤.(여기서 가이더의 설명이 '나폴레옹 전기'보다
더 재미 있었다고 하면 '웃기지 마라 !'하시겠지만 정말입니다.
지하에 안장된 '대리석 관'과 전시관을 둘러 보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으니까요. 구경보다 '설명'듣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영웅도 죽으면 그만인 것을...... 물론 후손들이
저렇게 기념관을 만들어 주는 정도면 그는 영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승자의 역사'를 위해
죽어간 졸병이 그 얼마며, 또 적군(?)의 사망자는 또 얼마
입니까? 이리저리 휘둘리다 죽어간 민초들만 불쌍하죠.
'베르사이유 궁전'(이건 빠리 교외에 있는데 정말 '호화로움의
극치'라고 해도 될 정도 였습니다. 궁전 내부나 정원의 치장이
20세기에도 빛을 발하고 있으니 저 궁전에 사람이 살던 시대에는
얼마나 휘황찬란 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침실'이 아주
휘황찬란 하던데 거기서 잠이 제대로 들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각종 치장이나 그림(천정에도 그려져 있었습니다.)에 정신을
뺏기다 보면 언제 잘까? 하는 걱정이 들 지경이었죠.) 그리고
나폴레옹의 약탈품의 집합소인 '루브르 박물관' 미술책에서
보던 조각, 모나리자 등 눈 청소 확실하게 했습니다.
지중해산 조기(정말 제 팔뚝만 했습니다.)와 김치찌개에 곁들인
'와인', 저녁이 환상적 이었습니다. 그 때 먹은 '조기구이'의 맛은
아직도 입안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다시 파리에 가면 그 식당을
찾아가서 꼭 조기구이를 한번 더 먹을 겁니다. 오후 내내 고팠던
배를 채우고 호텔로 왔습니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하고
방으로 돌아왔지만 뭔가 허전했습니다. 더구나 내일은 독일의
'뒤셀도르프'로 날아가야 하는데 파리의 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는 게 허전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친구 ‘김 우진'군이 제게해 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빠리에 가면 '물랭루즈' 나
'Crazy Horse' 같은 유명한 쇼가 있는데 그건 꼭 한번 볼만해.
시간 내서 구경 해봐."
그랬습니다. 쇼가 보고 싶었습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까 오후에 지나다가 호텔에서 멀지 않은 '샹젤리제'거리에서
'리도(LIDO)'라는 간판을 본 기억도 있기에 달렸습니다.
헐레벌떡 도착하니 줄이 꽤 길었습니다. 표를 사려하니 안내원이
"예약을 하셨나요?" 하고 묻길래 "아니."했죠. 그랬더니 예약을
하지 않으면 테이블을 줄 수 없고 뒤의 바에서 구경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속으로 "지금 안에 들어가 쇼를 보는 게 중요하지
테이블 이면 어떻고 뒷줄의 '바(bar)'면 어떻습니까?" 하면서
100프랑 인가를 주고 표를 샀죠. 들어가니 그 표도 음료수
두 잔까지는 주는 것 이었습니다. 위스키를 한잔 하는데 불이
꺼지고 쇼가 시작 되었습니다. 무희들은 왜 그리도 몸매가 좋고
예쁜지요...... 팬티 한 장 걸치고(물론 화장과 깃털 같은 치장은
화려하게 했죠.) 펼치는 연기와 춤은 저의 넋을 홀라당 앗아가
버렸습니다. 또 보고 싶은 파리의 쇼 였습니다. 후에 귀국해서
들은 얘기 입니다만 Crazy Horse 의 쇼는 '훨씬 야하다.'고
합디다. 파리에 가시면 꼭 한번 보십시오.뒤셀도르프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독일에서 몇 번째나 큰지
몰라도 파리에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 걸로 봐서는 꽤나 큰
도시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경제도시로 큰 편 이라 합디다.) 호스트 회사에서 지정해 준
호텔로 가니 일행이 우리뿐 아니라 상당히 많았습니다. 체크인
후에 호텔 식당에서 먹은 점심...... '소태'같았습니다. 독일사람이
짜게 먹는다는 것을 알기는 알았습니다만 그렇게 짜게 먹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수프가 소금물 같았습니다. 메인디시로 나온
음식도 소금을 하나도 치지 않았는데 짰습니다. 반도 못 먹고
포기했는데 사장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빵만 먹었죠.
오후에 초청회사의 프레젠테이션 과 견학을 끝내고 시내관광을
했습니다. 큰 도시는 강을 끼고 있고 뒤셀도르프를 관통하는
강도 한강 만큼이나 넓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고 정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그날 저녁에 먹은 '수십 가지 소시지' 였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선택했겠습니까만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이
의외로 허름한데 대해 약간은 실망했습니다만 조금 후에 나온
음식이 그 실망을 한방에 날려 버렸습니다. 무제한 제공되는
갖가지 소시지와 맥주에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습니다. 한국서 같이 간 실무자들과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어'로 그리고 다른 회사 사람들과는 (잘 안 되는)'영어'로......
그래도 대강의 뜻은 서로 통하는지 웃을 때는 웃고 맞장구 칠
때는 "Are you sure?" 하는 맞장구도 쳐 주었습니다. 소시지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고 그 맛의 '진수'도 만끽
했습니다.
'뮌헨'으로 가는 날 입니다. 뒤셀도르프에서 프랑크 푸르트
까지는 '루프트한자'(독일 항공사)에서 운영하는 기차를 타고
'라인 강'을 따라 경치구경을 하고(중간에 퀠른, 본, 같은 도시와
'로렐라이'같은 명소를 지난다고 했습니다.) 프랑크 푸르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뮌헨으로 가는 조금 복잡한 일정 이었습니다.
뮌헨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버스가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또 눈이 번쩍 했습니다. 상반신을 벗고 일광욕을 하는 청춘이
왜 그리도 많은지요?
FCI 총회 기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중앙투자금융주식회사가
FCI 정회원으로 가입했다는 것뿐입니다. 그 외 많은 얘기가 오가는회의의 연속 이었습니다만 아직 업무 시작도 안 한 회사가
이미 거래를 하면서 발생한 문제해결을 위한 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알겠지만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뮌헨의 다른 기억은 '쌍둥이 표' 칼을 산 것과 "호프. 브로이. 하우스"라는
무지 막지 하게 큰 맥주 집(한국의 큰 호프맥주 집에 가면 이 집 사진이
벽에 많이 붙어 있습니다. 중앙무대에 밴드가 나팔을 불어대고
홀에 가득 찬 사람들이 맥주에 원수나 진 것처럼 마셔대는 사진
말입니다.)에서 여자 종업원이 한 손에 1,000cc짜리 조끼를
다섯 개씩 열 개를 한번에 날라다 주는 그 생맥주를 취하도록
마신 기억은 있습니다. (그 여자 종업원은 힘도 좋습디다.)
참 한가지 빼먹을 뻔 했습니다. 총회기간 중 하루 투어와 오페라
감상이 있었습니다. 투어는 뮌헨에서 버스로 한 시간 가량 가면
산 중에 위치한 '노인테. 슈바인’성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바그너 인가요 유명한 음악가가 작곡한 '로엔그린'의 무대가
되던 성 이라고 합디다. 그 중에 나오는 곡은 요즘도 결혼식에
나오는 곡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성에서 안내하는 아가씨가 하도
예쁘길래 사진을 찍었더니 벽에 그린 그림의 물간이 바랜다고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라고 경고를 하더군요. 돌아오다 산간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독일 사람들이 즐겨 쓴다는 모자를 하나
샀는데 그게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페라는
'라보엠' 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누군가가(주인공 이름을
모르니까요. 극중의) "미미!"하면서 길게 뽑으니 불이 꺼지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오더라는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 오페라는
훌륭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엘 갔습니다. 첫날은 저녁 때 당시 주 덴마크
대사님 댁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것 외는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관광 겸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행기가 오전에 도착 했기에 점심도
먹어야 했습니다. 이리저리 산책하다 '인어공주' 동상에 갔습니다.
'안데르센'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라는데 의외로 초라한
느낌이었습니다. '성 개방'이 잘된 북구라 그런지 길가에
'섹스용품'을 파는 가게도 즐비했습니다. 1983년도의 뉴욕
맨하탄 42가만큼은 못하지만요.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외국에서 무난한 점심을 먹으려면
'중국집'을 찾으면 된다고 하시면서 사장님이 앞장서 들어간 곳은
중국집이었습니다. 주문도 잘했고 음식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사장님께서 '단무지'를 찾으시는 겁니다. "저는 그 걸 영어로
뭐라는 지 잘 모르는데요......"(그 후에 알았습니다.) 그러자 종업원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볼펜으로 메모지에 大根이라고
썼습니다만(저는 '단무지'를 한자로 대근 이라고 쓰는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종업원은 宇宙 語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래디시.피클'이라고 했으면 알아들었을지 모릅니다만 그때는
'무'가 영어로 뭔지 몰랐습니다.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하고 있는
반찬만 먹었습니다.
호텔로 와서 잠시 쉬다 5시에 만나기로 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호텔의 안내서를 펼쳐보다 야한 옷차림을 한 여자의
사진과 함께 '에스코트. 서비스’라는 광고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어떤 건지 궁금해서 전화를 돌리는데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문을 여니 사장님이 뭘 하나 사야겠는데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포기하고 나섰죠. '티볼리공원'을 처음
봤습니다. '놀이공원의 시초'라고 하더군요.
'연어 버터구이', 대사관저에서 먹은 저녁요리인 연어구이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대사 사모님의 솜씨가 좋아서 였겠지만
그때부터 제가 '연어킬러'가 되었습니다.
코펜하겐에서 동경으로 날아가는 SAS 항공사의 747기는 제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리가 비어서 인지 이코노미
좌석을 Business로 up-grade 시켜 주었습니다. 난생 처음
2등석 비행기를 탔으니까요. 기내식도 메뉴가 있고 공짜로 주는
술도 좋은 것 같았습니다.
'동경',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라인데 그 때가 처음 이었습니다.
우선 비행기에서 내리니 푸근 했습니다. 얼굴모양도 비슷하고
말도 자주 듣던 말이라 의미는 몰라도 당황하지는 않게 되더
라고요. 반 나절 투어를 하면서 동경의 겉핧기를 했고 저녁에
짬을 내어 당시 일본서 공부하던 '장 형석'군을 만나 일본의
선술집에서 일본 분위기를 만끽했고 또 신주꾸인지 록본기인지
어떤 건물 옥상에서 벌어지는 '여자스모'를 맥주를 홀짝이며
구경 했습니다. 코끼리 같은 남자들이 하는 '스모'보다 여자가
비키니를 입고하는 스모가 훨씬 더 야하다는 그 때 알았습니다.
이렇게 15일간의 유럽, 일본 스쳐가기는 끝났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유레일 패스를 끊어서 자세히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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