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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에서 '인천함을 타고....
    여행기 & 여행 사진 2009. 4. 17. 15:25

    **** 해군 함정타고 진해에서 인천 까지. ****

    1973년 우여곡절(대학, 과 선택 문제) 끝에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1학년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처음 밝힘니다만 그때 제가 확인한바는 그 '경영학과'의
    '커트라인'은 365점 이었습니다. (아마 450점 이나 500점이
    만점 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받은 점수가 367점 입니다.
    정말 아슬아슬 했던겁니다. 다행히 커트라인에 걸리지 않은
    것만해도 그게 어딥니까 ?

    지금(2004년)도 하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대학생도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고 '필수'였습니다. 군대 영내에는 한 발짜욱도
    들어가 보지않은 녀석이(누굴 면회 가거나 친척, 지인중에
    군인이 없었으니까요.) 목총을 들고 제식훈련, 총검술을
    하노라면 (지금은 부흥사로 활약하시는) '김 신조'씨가 한없이
    미워지기만 했습니다.((고등학교, 대학에 '교련'과목이 생긴 것은
    청와대를 습격하기위해 북한의 124군부대원 30여명이 자하문의
    고개까지 진출하여 목표물(청와대)을 코앞에두고 당시
    종로서장(지금도 터널말고 자하문 고갯길로 세검정 쪽으로 가면
    그분 동상이 있음.)과 경찰들의 검문으로 교전이 시작되어
    약 1주일만에 '김 신조'씨 혼자 생포되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된
    1.21 사건 때문입니다. 예비군도 이때 생겼습니다.))

    그런 교련을 어거지로 하면서 한학기를 마감할때쯤 '방'이 하나
    붙었습니다. "대학생 병영체험" 병역미필자로서 병영체험을
    희망하는 학생은 방학중 1주일간 육군, 해군,(특전사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군은 없었던 것 같구요) 부대에서 군인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병영체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당근"이 따라붙지 않으면 어느 정신나간 청춘이 지원을
    하겠습니까 ? 그당시 군인은 사람도 아닌시절이었는데요.
    (이런 유머가 있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기차를 탔는데
    잘못찾아 '군용칸'에 타게 되었습니다. 객차안을 휘~이
    둘러본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여긴 사람은 하나도 없고
    군바리들만 잔뜩있네...."
    였답니다.)


    그 당근이 '병영체험 수료자는 2학기 교련 A 학점으로 면제'
    였습니다. 솔깃했죠. 일정을 보니 당시 맹활약하던 YBS
    (학교 방송국 입니다.)의 하계수련회와 2일이 겹쳤습니다만
    교련면제라는 당근에 혹해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처에 알아보니 '해군의 경우는 군함도 탄다.'는 말에
    다른 것 생각할 틈도 없이 해군으로 정했죠. 육군에서
    탱크를 태워 준다고 해도 해군함정이 폼나지 않습니까 ?
    값도 비싸고...

    7월 하순 어느날 예쁜 여학생국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집결지인
    서울역에 갔습니다.(수련회는 대전 근처의 '매포'라는 곳에서
    했었는데 먼저 서울로 간거죠.) 한 100명정도 젊은 청춘들이
    모여있는데 아저씨 같은 분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군필자도 받아주었다고 합디다.(지원자가 모자랐는지...)

    밤 10시경에 진해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12시경 기차가
    매포를 지나가는데 수련회장이 멀리 보이는데 불이 환히
    켜져 있더라구요. " 저 양반들 얼마나 즐거울까 ?"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더라구요. 밤새 달린 기차가 진해역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 경 이었습니다. 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해군
    사관학교'로 가더군요. 거기서 '이 순신 장군'얘기도 듣고
    남해안 어딘가에 잠수해 있을 '거북선'찾기에 평생을 바치고계신
    교수님의 '거북선 예찬'강의도 듣고 또 사관학교를 한바퀴돌며
    관광 (?)도 했습니다.

     

    둘쨋날에는 수영강습도 받고, 이때 멀리가는 '원영'이라는 것도

    했습니다. 한 2Km 헤엄을 쳤을 겁니다.

    다행히 수영은 그런대로 해서 원영도 잘 했죠.

    그리고 3일째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자 마자 학생중대 중대장도
    뽑고 해서 수병 1명에 학생 한명 꼴로 임무를 주더라구요.
    '우 갑판 기관총 사수'가 제게 떨어진 3일간의 임무 였습니다.
    '함포 사수'가 부러워 죽을 뻔 했습니다. 함포는 적의 공격을
    막는 철판이 둘러쳐져 있고 그속에 있는 함포에 앉아서
    헨들을 이용해 함포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리며 포를 겨누는데
    기관총은 배 난간에 몸을 의지하는 철근 같은 것만 있고
    (상체는 완전 노출 이었죠) 기관총 1정 딸랑 걸치게 되어
    있더라구요. 물론 총알 붙들고 넣어주는 부사수 보다는 조금
    나았지만요. 하루에 두번씩 싸이렌이 울리면 철모, 구명조끼
    그리고 기관총을 받아들고 제 자리로 쫓아가서 총을 거치시키고
    고깃배 조차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총구를 세우고 멍청하게
    서 있는 게 훈련의 전부 였습니다.


    해군은 생각보다 음식이 좋았습니다. 항해를 나가면 하루 4번
    식사를 하더군요. 아침, 점심, 저녁, 밤참(이 밤참은 주로 국수를
    주고 아이스크림도 줍디다.) 군함속의 식당군기도 죽입디다.
    우리 대학생 훈련단은 하사관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배안의
    작은 식당에 장교, 하사관, 수병용 식당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더라구요. 장교들은 가만히 있으면 당번이 밥을 날라다 주고
    나머지분 들은 자기가 가져다 먹더라구요.

    전라도 남해안을 지날때가 밤 이었는데 밤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밤바다를 차고 오르는 '날치'의
    지느러미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게 보석보다 아릅답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배가 만리포 앞바다를 지나던 마지막날 밤에 장끼자랑 시합이
    있었습니다. 학생 5명, 수병 5명 출전. 심사위원은 장교들...

    제가 공교롭게도 다섯명 중에 한명으로 발탁(?)되어 지금까지
    두번밖에 하지 않은 비장의 '오두방정'을 떨어 1등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73년 2학기 교련시간은 다른 친구들이 '목총'들고
    땀 흘릴 떄 저는 신촌시장 입구의 '국일다방'에서 커피마시며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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