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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아서
    여행기 & 여행 사진 2009. 4. 3. 10:47

    *****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 구경 *****

    세계 유명한 곳 중 꼭 가봐야할 50 곳 중의 한 곳인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을 갔습니다.

    1983년 1월, 그 당시 같이 공부하던 학생중 저 보다도 나이가
    많은 5명의 한국학생 중 한명이 '김 유환'형 이었습니다.
    그 형은 지금은 없어진'고려합섬'에서 경리부장을 하시다
    회사의 지원으로 유학을 온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중남미의
    '코스타리카'인가 하는 나라에 있는 봉제공장의 공장장으로 근무
    하시면서 한국과는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1년에 한번정도 한국에 다녀 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다녔던 '중앙투자금융'도 지금은 사라 졌습니다만.)


    그 형과 유학생활 1학기를 끝내고 다음학기 준비를 하기위해
    도서관(와싱턴 광장 남쪽에 있는 붉은색 건물, 약 8층)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번 주말에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아가라가 어디 입니까 ? 세계 3대
    폭포 중 한곳 아닙니까 ?(나머지 둘은 남 아메리카의 '이과수' 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로 알고 있습니다.) 순간 저도 같이 갔으면
    하는 마음이 불꽃같이 일었습니다. "형님, 몇분이나 갑니까 ?"
    "나하고, 처남(마침 이분이 연수를 와 계셨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분이 짬을내어 나이아가라에 갔으면 하는 강력한
    희망을 내 비추어 그 분의 친한 친구인 교포 한분이 휴가를 내어
    같이 가기로 했더군요.), 그리고 처남 친구 인데 나도 그 친구는
    몇번 만나서 잘 알아." 하시는 것 아닙니까 ? "형님, 그럼 차에
    한자리 비겠네 ? 그 자리에 제가 끼어가면 안되겠습니까 ?"
    차도없이 지내는 저의 처지를 잘 아시는 유환 형이 "그래, 내가
    한번 얘기해 볼께."라고 선선히 답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몸은 이미 나이아가라 폭포 앞으로 날아가 있었습니다. 그 모양이
    어떤지 ?, 또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 다음날 전화가 왔습니다. "박형 같이 가기로 했으니 준비하고
    오시오." 라는 유환 형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약속한 날 유환 형네 집으로 갔습니다. 형수님은 남편과 오빠
    그리고 그 친구와 후배가 먼길을 간다고 '김밥'까지 싸 주셨고
    '운전 조심하세요.'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침 8시경에 4명의 30대 악동(아, 저는 20대 였습니다. 만 29세
    였으니까요. 그때는)들이 차 이름은 잊어 버렸습니다만 '디젤
    스테이션 왜건'에 몸을 싣고 목적지인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떠났습니다. 퀸즈의 아스토리아근처에서 출발 했으니 'Long
    Island'를 가로지르는 495번 도로를 타고가다 '스롱.넥'브리지를
    지나 88번 도로를 탄것 같습니다. 88번 고속도로는 1976년 카나다
    '몬트리올'에서 올림픽이 열릴때 추가로 공사하여 그대로 북진을
    하면 '몬트리올'까지 간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기차와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는 저는 도로이름이
    나오면 젬병 이었습니다. 그때는 어디 갈때는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에 얹혀가는 신세였고 또 미국 운전 면허증이 없었으므로
    길을 알 필요도 없었거든요. 그저 운전수 옆에 앉아 지도를 보면서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걸로 길을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 길 안내는 한번하면 금방 잊어버리니 직접
    운전하면서 가는 것과는 천지차이라는 것은 요즘 운전자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아닙니까 ?

    그때까지만 해도 Throng Neck Bridge 를 건너 본 것 외는
    그 방향으로 북쪽으로 가 본 적이 없는 제건 차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1월이라 앙상한 가지만
    보였지만 길가에 빽빽히 들어서 있는 나무들도 신기했고, 서울과
    비슷한 도시풍경만 보던 제게 미국 교외의 참모습은 그야말로
    '신기함' 그 자체였습니다. 사진에서만 보던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들이 수도없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사이의 공간과 공원,
    학교마다 붙어있는 축구장과 야구장 들은 부러워서 벌린 입을
    다물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길은 또 어떻습니까 ? 편도 2차선에
    가로등도 없는 '경부고속도로'와 완공여부가 정확치는 않습니다만
    편도 1차선인 '영동고속도로'만 보고 유학 온 저의 눈 앞에
    펼쳐지는 편도 4차선에 가로등이 즐비한 88번 도로는 '환상'
    자체였습니다. 그 길 위로 달리는 차는 또 얼마나 좋습니까 ?
    거기다 하나 더, '중앙분리대'를 보며 '땅 넓은 나라를 더럽게
    부러워' 했습니다. 중앙분리대가 도로 4차선 정도의 넓이로
    되어있는데 거기다 잔디까지 심어져 있으니... 겨울이라 누렇게
    보였지만 여름에 운전하는 사람에겐 그 경치가 얼마나 폼
    나겠습니까 ?


    이렇게 3시간 남짓 운전해서 도착한 곳이 뉴욕 주(州) 주도가
    있는 'Albarny'였습니다. New York State University(SUNY)
    대학 본부가 있고, 유명한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는 유환 형의
    설명에 우리 일행은 주 청사 앞 광장에서 김밥을 먹고 '자연사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지구의 생성부터 현재(1983년)까지의 자연의 변화를 조목조목
    설명해 놓은 것에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릴 지경이었습니다.
    지구에 동물이 생성된 가설, 그 동물들의 진화, 인류의 탄생
    문명의 발전 등 천천히(자세히 보려면, 설명을 읽어가며,)보려먼
    한 2-3일은 족히 걸릴 것 같은 넓은 박물관을 '주마간산'격으로
    훓었는 데도 1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저런 곳을 구경하면서
    역사공부를 한 학생과 외우기만 한 우리학생의 '사고의 폭'이
    누가 넓을 것인가는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 같았습니다.

    다시 차를 몰아 좌로 90도 꺾어 (아마) 290번 도로에 올랐습니다.
    서쪽으로 써쪽으로 '시라큐스', '이타카'를 지나 버팔로에 접어든
    시각에는 날이 이미 깜깜해져 있었습니다. 멀리 '하워드 존슨'의
    뾰쪽지붕(유명한 모텔 체인 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망해서
    요즈음엔 흔적도 없었습니다. 미국과 카나다에...)도 보고 하면서
    사인판을 따라(도로사인 정말 잘되어 있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까지 갔습니다.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정말로 폭포물
    떨어지는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국서 온 4명은 '저 소리가
    우리를 반기는 나이아가라 폭포소리 라고' 믿었습니다.
    안 보이는 폭포를 구경할 수도 없어 숙소를 찾았습니다.
    돈 아끼려고 4명이 한방에 들어 아무렇게나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으려고 '맥도날드'에 들른 우리 4명은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뉴욕 등 대도시의 햄버거가게의
    종업원은 대부분이 흑인이거나 간간이 동양인이 있고 백인은
    드물었는데 4-5명의 종업원 모두가 영화에 나올 것 같이 이쁜
    '백인 아가씨'들이었으니까요. 햄버거 맛이 어땠는지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나이아가라' 공원 주차장에 차를대고(일찍이라 그런지
    아니면 겨울 비 시즌이라 그런지 $5 하는 주차요금을 안
    받았습니다. 2004년엔 그게 $10 로 올라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걷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레인보우.브릿지'(미국과
    카나다를 잇는 국경다리)위로 아침안개가 피어오르는 전경은
    아직도 눈에 삼삼 합니다. 유환 형의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이아가라 경치는 카나다 쪽에서 폭포를 마주보며 보는 게
    장관이고, 미국 쪽에서는 옆 모습만 보게되어 그 장관이 조금
    줄어들고, 카나다 쪽에 가면 터널속으로 들어가 폭포물 떨어지는
    바로 뒤에서 쏟아지는 물만 볼 수도 있고, 저기 보이는 전망대
    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폭포를 위에서 볼 수있어 그것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장관인데... 카나다 비자가 없으니..."
    그랬습니다. 그때만 해도 카나다를 방문하려면 한국인은 비자를
    따로 신청해야 했으며 그 기간이 대략 1주일이 걸렸는데 1주일
    전에는 나이아가라에 갈 생각도 안했는데 누가 비자를 신청해
    놓았겠습니까 ? 일행중 오직 한분(미국 영주권자)만 갈 수
    있었지만 그 분도 우리를 위해 포기 하더군요. "차를 몰고 한 20분
    다녀 오시라." 는 우리들의 권유를 고사하고 말입니다.
    지금(2004년)은 사람이 걸어갈 수 없게 되어 있지만 '나이아가라'
    폭포가 시작되기 직전 지점인 '나이아가라 강' 중간에 '고트
    아일랜드'라는 섬(미국령)으로 가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그
    다리는 요즘에도 서 있지만 출입을 못하게하고 훨씬 위에 새로운
    다리를 하나 건설해서 그리로 차와 사람이 지나가게 하더군요.)
    그 옛날 다리를 지나(차로) 섬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호기심 많은
    4명이 얼음이 흐르는 물가로 가서 난간에 고개를 숙이고 물을
    쳐다 보았습니다. 정말 맑고 투명한 물이 어디서 부터 흘러오는지
    많기도 했습니다.(미국 5대호 중의 하나인 '이리'호수와
    '온타리오'호수를 잇는 강이 '나이아가라 강'이고 그 중간 쯤에
    거대한 폭포가 생겼는데 그게 '나이아가라'폭포 입니다.)
    그런데 갑짜기 경찰 백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우린 주위를 둘러 봤지만 우리일행외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우리 잡으러 왔구나 !'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주하여 우리가 타고온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있던 쪽을 보니 순경들이 그곳으로 가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릴 찾나보다.' 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으니
    백차는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미국측 전망대에
    올라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겨울이지만 혹시 사고가 날까봐
    전망대 위엔 공원직원이 망원경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까 우리가 있던 쪽을 바라보니 그대로 보였는데 멀리서
    보니 거기에 사람이 있다면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게
    보였습니다. 폭포 중앙까지 가는 유람선(Made of Mist)도
    못 타고(겨울에는 운항 안함), 비자가 없어 '카나디안
    나이아가라'도 못 보았지만 10시간동안 차를 몰고 온 노력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물소리를 뒤로하고 차를 돌렸습니다. 온 길을 거꾸로 가는게
    아니라 또 다른 곳을 향해서 말입니다. How Cavern 을 향해
    달렸습니다.

    '고수동굴', 울진의 '석류굴' 등을 돌아 보았지만 이곳 '하우'
    만큼 규모가 큰 곳은 처음 이었습니다. 물론 세계 어딘가는
    이곳 보다 더 큰 동굴이 있겠지만요.
    우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습니다.(그러고 보니 이 동굴을
    어떻게 발견했는지가 궁금합니다. 광산 업자가 광맥을 탐사하다
    발견했는지 수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경가는 동굴은
    처음이니까요. 한참 내려가서(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려서인지
    아니면 깊이깊이 내려가는 것인지) 도착하니 동굴구경이 시작
    되었습니다. 굽이굽이 꼬불꼬불은 어느 석회암 동굴과 다를 바
    없었으나 신기한 것은 연못(그냥 물이 고인 것이 아니라 아주
    큰 규모의 연못이었습니다.)에 배를 띠우고 그것도 타고 한참을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처음 온 미국인들은 마냥
    신기한 듯 'WONDERFUL !'을 연발하지만 한국에서 몇개를
    구경한 터라 그렇게 신기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규모는 놀랄만
    했습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차가 한창 New York 으로 향해가는데 누군가가 "우리 그냥
    가지말고 우리의 운을 한번 시험해 보면 어떨까요 ?" 했죠.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라 궁금해 했는데 그게 바로
    '아틀란틱.시티'로 가자는 말이었습니다. 만장일치로 차는
    방향을 살짝틀어 도박의 도시 '아틀란틱.씨티'를 향해
    달렸습니다. '뉴저지.턴파이크'에서 아틀란틱.씨티로 가는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길 양쪽의 간판이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Jack Pot'을 기대하며 마구 달렸습니다. 도착해 보니 도시는
    아주 낡았는데 카지노 건물만 새 것 이었습니다. 그 중, 한 곳을
    찾아 들었습니다. 소위 한국인이 잘 못알고 있는
    빠찡꼬(Slot Machine 이 맞는 것으로 알고 있슴.)만 있을줄
    알았는데 '노름'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바카라', '블랙.잭', '룰렛' 등 등... 공짜로 술을 주는 아가씨는
    어찌그리 예쁜지 팁을 주지않고 배길 수가 없더군요.
    $10 가볍게 날렸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쓸럿.머신' 뿐이라
    거기 붙었는데 한 30분만에 없어지더라구요. 여기도 놀라운
    상술이 있습디다. 저도 처음에는 순서(몇개씩 넣고, 나오면
    어떻게 하고 등등)를 정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엉켜버려 마구
    동전을 집어 넣었더니 금새 날아가 버리더군요.
    슬럿머신이 있는 기계에는(특히 기본인 25센트짜리) 의자가
    없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다리가 아파 처음 계획한
    대로 베팅을 하지않고 아무렇게나 하게 만드는 거죠.

    도박장 구경값을 내고 뉴욕으로 돌아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나이아가라의 쏟아지는 물줄기가
    눈앞에 삼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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