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여행 II
***** 수학여행 II *****
중학교 2학년때의 수학 여행은 제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1967년 인가요 ? 그때즘 수학여행이라고 간 곳이
"서울 SEOUL" 이었습니다.
창덕궁, 경복궁, 장충체육관, 남산꼭대기(버스타고 스쳐 지나간
곳) 기억에 남는 곳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 군요 3박 4일의
여행에서 생각나는 곳이 요것 밖에 안된다는 것은 그 여행이
얼마나 재미가 없었는지 이해가 갑니까 ????
그러나,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은 그야말로 짱짱하고 아직도
뇌리에 찐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선 여정부터 소개하죠.
서울역(우리학교 2학년 수학여행단만 타는 전용열차. 이해가
안되실지 모르나 쨍쨍한 빽들이 동원되어 600여명을 위한
전용열차가 떴습니다. 1971년에 말입니다.)--- 진해, 해군
사관학교--- 군함 승선(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4인치
함포가 앞뒤로 2개씩 장치되어있는 구축함 급 이었습니다.
함장이 대령 이었습니다.)--- 부산 해운대--((제가 만든 옛날
학교신문을 찾아보면 되지만(신문반 이었습니다. 이름만
있는 게 아니라 1년에 5-6차례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폼나게...
전국 고등학교 신문 컨테스트에서 '최우수상'도 받은 신문
입니다.) "경주"를 거쳤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전용
열차로 서울.
이랬습니다.
좀 죄송하고 자만이 섞인 얘기 입니다만 1970년대 초반에
쨍쨍한 학교(경기, 서울, 경복, 용산 등...)는 공부만 하지
'수학여행'은 안 갔습니다. 그런 것은 2류(?) 학교 학생들이나
가는 거고 우리 1류는 공부만(?) 해서 '노구리 왕초(2000년 대
초반 대통령)' 도 얘기 했듯이 "좋은 학교"에 가면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시기에 우리가 아직도 존경하고 있는 모교 선배이신
당시 교장 선생님(서 장석 선생님. 우린 "짱똘"이라고
불렀습니다. 얼마전 작고)께서 용단을 내려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첫 수혜자가 제가 속한 '2학년 부터' 였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4일동안 책 안 펼쳐도 되는데.....
그렇게 결정이 나자 그 다음은 황홀하게도 일사천리 였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려면 '경기'답게 화끈하게 갔다오자." 라는게
학생, 선생님, 동창회 선배님 들의 공통적인 생각 이었습니다.
(1)어디로 ? 부산, 진해 해군사관학교(이곳이 무슨연유로 수학
여행지에 포함되었는지 기억에 안남니다만 그때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해군장교'가 3군 중에 가장 폼나서' 이런
이유는 아니었구요.)
(2) 뭐 타고 ? 당연히 전용열차 !!!(왜냐하면 고등학교 수학
여행에 철도청(당시)에서 전용열차를 대여해(?) 준 적이
딱 한번 있었기 때문에 천하에 경기도 당연히 '전용열차'
였습니다.
* 사실 그당시 3공화국 말기 유신 직전년도에 국가의 서슬이
어땠습니까 ? 그 시절에 전례가 한번 있다고 우리가 그걸
관철 시키는 데는 선배님들의 지대한 공로(?)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15명 전후되는 장관 중 6-7명이 선배였습니다.
아무리 서슬이 퍼래도 장관 대 여섯분이 압력을 가하는데
'철도청장 님' 인들 배길 수 있었겠습니까 ? 전례도 있는데...
그런데, 그 전례라는게 제가 다닌 '경기고등학교'보다
한 한달쯤 먼저 수학여행을 간 '경기여고'가 철도청 사상
처음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용 전세열차'를 관철시키면서
만든 전례였습니다. '경기여고'는 무슨 힘으로 ???
하실 분이 많겠지만 그건 그 당시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둘째 따님이 수학여행을 가시는데 전세
열차가 문제가 되었겠습니까 ? 전세 비행기도 내 주었을
겁니다.
'제주도'로 간다고 했으면...
그래서 우리도 '전용열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축함'은 진짜 선배님들의 위력을 보여준 사건
이었습니다. 정확한 내막은 모릅니다만 당시 학교에서
해군에 사관학교 방문 공문을 보내면서 군함 얘기를 같이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군의 답은 "좋다" 였지만 군함
동원에는 상당한 일이 물밑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군인, 국방부가 어떤 곳입니까 ? 그런 곳에서 고등학교
대표들이 모여도 허락을 할까말까 한 일을 일개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군함을 움직인다는 것이(그것도 한 10분이
아니라 진해에서 부산까지 수송을 해 주었으니까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 일설에는 당시 국방부 장관님이 크게
신세진 분이 "미래 나라의 동량들에게 해군을 알리고
오히려 해군이 그런일도 한다면 '대민봉사'차원에서도
광고효과도 있어 도움이 될걸세..." 라는 말에 승인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믿기지 않는 얘기 입니다.
어쨋던 이 일로 우리 동기중 3명이 '해군 사관학교'에
응시해서 합격하고 지금도(2004년) 해군대령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해군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을 겁니다.
(3) 일정은 ? 그건 3박 4일로 이미 되어 있더라구요.
이렇게 해서 저의 3번째 수학여행은 시작됩니다.
기관사와 승무원(여객전무와 또 한사람 ?)을 제외하면
'우리세상'인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진해까지 가는 기분 !!!!
한 마디로 째 집니다. 정거장도 없습니다. 빠른 기차를 위해
길 비켜줄 때 와 선로 바꿀때(마산서 진해가기 위해 선로변경
등)를 제외하면 그대로 달리기만 합니다. 쭈---욱
해군사관학교에서 '이 순신 장군'이 그처럼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구축함에서 '함포사격'과 '기뢰투하' 를 두 눈으로 직접 보신분
있습니까 ?(해군 말고)
물론 해군의 훈련 일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는지 몰라도 우리가
타고있는 군함에서 표적을 향해 함포를 쏘고, PC 모니터 몸체
정도의 기뢰가 물속에서 터질때 위력이 그렇게 큰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잠수함을 잡겠더라구요.
'해운대'에서의 하루저녁은 그야말로 굉장했습니다.
'모교의 비밀'이라 여기에 적지는 못합니다 만 그 당시
'국제여관'에서 근무하시던 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선생님들과 반장들은 밤새 한잠도 못자고 나머지 학생들과
해운대 일대의 백사장, 술집, 포장마차 심지어 여관에서
숨박꼭질을 했었으니까요.
이때 우리의 수학여행이 어떤 신문에 기사로 났다는데
제 눈으로는 확인을 못했습니다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연.고전'을하면 사진과 함께 A4 용지크기
정도로 주요신문에 경기전적 등이 기사로 실리던 때인데
'경기고'에서 몇십년 만에 수학여행을 재개 했다는 것은 당연히
기사감 이었을 테니까요.
이런 여행들이 오늘의 방랑벽을 길러 주었을 거라고 믿습니다.